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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를 바느질로 기록하다” 작가 ‘재유노나카’

얼굴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죠. 하지만 때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외면을 가꾸는 일에만 집중하곤 합니다. 자신의 안이 아닌 밖에 시선을 둔 이들 틈에서 오랜 시간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기록해온, 재유노나카를 만났습니다.

“아프고 고립되었던 시기에 ‘나는 누구인가?’ 하고, 원초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그리게 됐어요.”

작업실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얼굴들 틈에 재유노나카와 마주 보고 앉았습니다. 오늘의 인터뷰는 재유노나카의 얼굴이 아닌, 그의 다른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대신 담았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얼굴'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안녕하세요. 바느질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제품(가방)을 만드는 <재유노나카>입니다. <재유노나카>는 제 활동명이자 제 작업을 소개하는 브랜드에요.”

<재유노나카> 하면 파란색이 떠올랐는데, 지금 이 공간도 온통 파랑이네요(웃음).

파란색을 굉장히 좋아해요(웃음). 어떤 이유가 있어서 좋아하기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언젠가 파란색이 ‘여러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안에서도 밝고 부드러운 느낌이라든가, 청명한 느낌과 우울의 감정이 모두 있어 깊이감에 따라 다르게 느껴져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더 좋아지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채우게 됐어요(웃음).

활동명이자 브랜드명인 <재유노나카>의 뜻도 궁금해요.

‘재유노나카’는 제 이름 ‘재유’와 안, 중심이라는 뜻인 ‘노나카’의 합성어에요. 제 중심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겠다는 의미를 담아봤어요. ‘미성숙한 인간이 많은 얼굴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얼굴을 찾아가는 성장 그림일기’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어요.
작업실 곳곳에 자리 잡은 얼굴들

‘내면의 진짜 얼굴’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인생에서 큰 사고가 있었고, 그로 인해 한동안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외부적으로든 내부적으로든 고립되었던 시기 같아요. 그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아플까, 왜 이 시간을 이렇게 혼자 버티고 있을까.’ 하고요. 그러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하고,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스스로 한 것 같아요. 나를 알아야 이 상황을 이겨내든 버티든 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제 내면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된 일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제 생각들을 기록하게 됐어요.

여러 얼굴 중 중심이 되는 얼굴을 ‘우두머리 얼굴’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어떤 게 ‘우두머리 얼굴’이 될 수 있을까요?

‘우두머리 얼굴’은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거기에 여러 감정들의 리더 역할을 하는 감정이 나와요. 그 부분이 저한테 굉장히 크게 와닿았어요. 그래서 우두머리가 되는 얼굴에 대해 생각하고 진짜 얼굴을 알아보는 것에 집중해 왔는데, 요즘엔 생각이 달라진 부분들이 있어요. 제가 다치기 전에 만난 사람들은 저를 지금의 저와는 다른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고, 부모님에게 저는 또 다른 사람일 수 있어요. 친밀함에 따른 표현이 다르고 상대방이 나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지 혹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서도 보이는 얼굴은 달라질 수 있겠죠. 가끔은 나도 모르는 내 얼굴들이 나올 때가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가 가진 얼굴들을 정의하거나 진짜 나를 찾기는 무척 어려운 일로 느껴져요. 그러면서 결국 표현되는 모든 얼굴이 제가 찾던 진짜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들이 하나로 이어져 오늘의 저를 만들었으니까요. 아직은 이 생각을 단정 짓기 어려워요. 그렇지만 우두머리 얼굴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이 봤을 때 편안한 얼굴이 아닌 내가 했을 때 가장 편안한 얼굴이요.
능숙한 손길로 천 위에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기록해온 시간의 깊이가 느껴졌다.

<재유노나카>의 그림은 표정과 감정을 쉽게 유추할 수 없다는 점이 특색 같아요. 얼굴에 마땅한 표정을 두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사람을 마주할 때, 표정만으로 그 사람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웃고 있지만 사실 내면은 웃지 않을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표정으로 나타나지 않는 부분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제 그림을 봤을 때 특정한 감정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더라도, 누구든 투영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치유 활동으로 시작한 그림이 저에게 친구가 되어줬어요.”

“작업 초기엔 ‘내가 도대체 뭘까, 난 어떻게 표현될까?’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식은 정말 다양하잖아요. 그중에서도 ‘실과 바늘’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제가 사용하는 색깔을 다 써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때 당시 몸이 안 좋아서 밖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나가서 살 수 없고, 또 제가 인터넷과 친밀하지도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요(웃음). 그래서 집에 있는 걸로 해결하려고 둘러보다가 실과 바늘이 눈에 들어왔어요. 어렸을 때 옷을 직접 리폼해서 입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걸로 그림을 그려봐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바느질로 그림을 그려보다가 그걸 우연히 가방에 얹게 되면서 지금의 작업 형태로 꾸준히 하게 되었어요.

<성장 그림일기>라는 큰 주제 안에서 꾸준히 작업해왔는데요, 작업을 할 때 공통적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작업의 전체적인 과정을 ‘치유’로 본다면, 생각한 것을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은 ‘표출’이 되겠고, 그 작업을 공개하고 나서 감사하게도 주문이 들어오면 약속된 표출 과정으로 제품을 제작해서 다듬고 보내는 과정은 ‘정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과정이 마음을 단단하고 단정하게 만들어 줘요.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숨은 얼굴 찾기’예요.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질문이거든요.“ 사진의 작품은 ‘숨은 얼굴 찾기 - 작은 지도(좌)’와 ‘꿈의 상자(우)’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한다고 들었어요. 제품을 담아 보낼 포장지도 직접 만든다고요.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감사해서 포장 부분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상업 활동을 하고 있지만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서 작업하는 건 아니니까요. ‘공감해주세요’라고 해서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주세요’라고 해서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드러내지 않은 어떤 부분을 알아봐 주시고 구매로 이어지는 모든 시간이 귀하게 와닿아요. 그 감사함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포장에 마음을 조금 더 담고 있어요.
제품을 담아 보낼 포장지에도 그녀의 세심한 손길이 닿는다. 제품 크기에 맞춰 재단한 한지에 바느질을 하고 실타래를 엮어 제품을 담는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 같아요. 후기를 보면 ‘친구를 선물 받은 것 같다, 애착 인형처럼 매일 들고 다닌다.’ 같은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그림이 제게 친구가 되어준 게 재유노나카 작업의 시작이었던 만큼, 제가 그리는 그림이 누군가에게도 친구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후기에서 구매자분들이 남겨 주시는 이야기를 보면, 저도 대답을 잘 해드려야겠다는 기분 좋은 책임감이 생겨요. 본인의 이야기를 깊게 적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사실 자기만의 이야기를 내어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 감사함에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민해서 답을 하고 있어요.

“생명체에겐 섭취, 소화, 배출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소화’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내면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면서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해요.

예전보다 능동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아요. 개인 작업을 하기 전 저는 뭔가를 직접 찾아서 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수동적인 인간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저를 계속 알아가면서 그 과정을 작업으로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능동적인 일이라 느껴져요.
“저는 관심사 자체가 너무 이곳에 집중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취미들을 만들어보곤 있는데 아직은 이 작업이 가장 재밌어서 샛길로 빠지는 일은 없었어요(웃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용기가 필요한 일 같아요. 그래서 이런 과정이 버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음양이 있듯, 어떤 일이든 좋은 부분과 조금 어려운 부분은 함께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예전에도 수줍음이 많긴 했는데 아무래도 물리적인 영향도 있었고, 점점 외부와 교류가 줄어들게 되면서 더 수줍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일이,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어렵게 느껴지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한테는 긍정적인 요인이 더 많은 일이에요. 제 마음에 안식이 되는 부분이 훨씬 크기 때문에 버거움이라는 감정은 아직 크게 자리 잡진 않은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만약 외부로만 시선을 둔 채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사실 그럴 때는 어떤 말을 해주는 것보다는 들어주는 게 더 중요할 것 같기는 해요(웃음). 만약 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음.. 모든 생명체는 섭취, 소화, 배출이 잘 돼야 건강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외부로만 시선을 두는 건 섭취에만 집중하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소화를 한다는 건 나를 알아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섭취만 계속한다면 그게 내 안에 어떻게 쌓이는지 어떻게 소화가 되는지 잘 모를 수 있겠죠. 내가 어떤 것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지 알고, 내게 좋은 걸 섭취하면서 잘 쌓아두고, 필요 없는 건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야 또 섭취하고 소화를 시킬 수 있으니까요(웃음).

<휴가休家> 방문객에게 전해주고 싶은 재유노나카의 한 마디는?

사회에서 여러 역할로 살아가다 보면 ‘내 얼굴은 몇 개인지, 진짜 내 얼굴은 무엇인지’ 고민하곤 하잖아요. 우선 내가 지닌 얼굴들을 먼저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다음 그 얼굴들의 무게를 잘 감당할 수 있게 된다면 조금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요? 저도 아직 어렵습니다. (웃음)
재유노나카는, 2016년부터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바느질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작업으로 기록하는 것뿐이라 말하지만, 그가 만드는 제품은 분명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넘어 어떤 메시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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