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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라는 창문으로 삶을 바라보다

“삶과 음식의 관계성” 다큐멘터리 PD ‘이욱정’

음식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시작으로 10여 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식문화를 탐방해 온 이욱정님. 그는 음식에서 떠올린 호기심으로 세상을 탐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역사와 문명, 생존과 치유 등 다양한 관점으로 찾아낸 맛의 연대기를 맛깔스럽게 담아내죠.
음식에 깊이 집중해 온 10여 년간의 여정에서 그가 얻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요즘 부쩍 건강에 대해 생각해요. 건강하게 살아있고, 정말 맛있는 음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요.”

음식은 우리 삶에서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원초적인 즐거움을 주기도, 삶 자체를 연속하게 하기도, 교류의 매개체가 되거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하죠. 이욱정님은 이런 ‘건강한 삶과 음식의 관계성’을 내내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세계의 사람들은 왜 똑같은 듯하지만 다른 음식, 다른 듯하지만 실은 서로 연관된 음식을 만들어 먹을까요? 이런 음식의 변주곡이 저의 관심 포인트에요.”

PD님이 음식 이야기와 함께해온 시간에서 예상되지만, 원래 음식에 관심이 많았나요?

어렸을 때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아주 즐거워했던 건 음식이었고요. 부모님이 음식에 일가견이 있고 요리도 잘하시거든요. 또 아버지는 좀 까다롭다고 할 정도로 미식가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정말 전 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집에서 맛볼 수 있었어요. 집에서 두부도 만들어 먹고 아이스크림도 만들어 먹곤 했죠. 그 영향으로 지금도 저는 촬영을 나가서도 무슨 음식을 먹느냐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웃음)

‘음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단순히 음식을 좋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프로듀서의 눈으로 볼 때 음식만큼 시각적이고, 모든 사람이 관심을 두고 좋아하는 소재면서 또 여러 관점으로 가지를 칠 수 있는 주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요리 그 자체, 미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가능하지만, 음식을 통해서 역사나 환경, 또 건강이나 의학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고요. 모두 다 음식이라는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음식만 한 좋은 주인공은 없는 거죠.
“최근 공개한 새 다큐멘터리 <푸드 크로니클>의 한 장면. “푸드 크로니클은 정말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통해서 세계를 여행하는 체험과 함께 인문학적인 지식도 얻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에요.”

특히 음식의 어떤 면에 흥미를 느끼나요?

우선, 제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다 숨은 주제가 있어요. <누들로드>는 동서 문명의 교류, <요리인류>는 세상을 움직인 음식, <푸드 크로니클>은 세상의 음식을 세 가지 범주 (감싸거나(Wrap), 동글납작하거나(Flat), 쌓아 올린(Layer))로 나눠 음식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해요.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건 ‘문화의 교류’에요. ‘사람들은 왜 똑같은 듯하지만 다른 음식을 만들고, 다른 듯하지만 실은 서로 연관된 음식을 만들어 먹을까?’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거든요. <누들로드>도 외국 공항에서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국수 먹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고요. <푸드 크로니클>은 총 11개국에서 촬영했는데, 만두 편만 해도 베트남, 중국, 대만, 일본, 한국, 네팔 그리고 이탈리아 만두까지 나와요. 만두는 전 세계의 대표적인 쌈 요리니까요. 이런 음식의 변주곡이 제 관심 포인트에요.

“치유의 음식은 기억과 맞물려있어요.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음식이라도 좋은 사람과 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나누는 그 시간, 그때 느끼는 감정이 중요해요.”

회복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가요? 한국에선 옛날부터 출산 후엔 미역국, 감기에 걸렸을 땐 된장국 등의 국물 요리를 활용한 것처럼, 각 나라 회복의 음식도 궁금해요.

사실 국물을 회복의 음식으로 생각하는 문화는 우리만은 아니에요. 국물이 있거나 죽 같은 형태를 유동식이라고 하잖아요. 먹기 편하고 소화도 잘되죠. 그래서 회복 음식에도 따뜻한 국물이나 수프, 죽 같은 형태가 꽤 많아요. 홍콩에서도 보약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국물 요리가 발달했어요. 몸이 허할 때 질 좋은 고기나 해산물을 넣고 정말 오랫동안 정성들여 달여 먹고, 또 집집마다의 레시피가 있죠. 숲속에서 버섯을 채취하고 그 버섯으로 한 요리도 생각나네요. 회복의 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풍미를 잘 우려내면서, 의외로 조리 과정이 단순한 경우도 많아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카탈로니아라는 지역이 있어요. 그 지역은 숲속에 자연산 버섯이 천지인데, 거기서 버섯을 채취해서 간단하게 요리해 먹어요. 그 버섯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재료니까요.

이번엔 PD님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의 회복이 필요할 때 찾는 음식이 있다면요?

저는 평양냉면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해외에 오래 나가 있을 때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은 냉면이고, 해장으로도 냉면을 먹어요. 비빔냉면은 별로 먹어본 적이 없고 무조건 물냉면으로 먹어요. 그다음에 저는 또 밥을 아주 맛있게 지어서, 잘 구운 고등어와 국을 함께 먹는 걸 정말 좋아해요. 저도 맛이 강한 음식보다는 슴슴한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이욱정 PD의 저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며 각국의 음식 문화를 맛본 경험을 책으로 더 상세히 기록했다.

2021년엔 <요리를통한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대화를 나누는 이곳이죠.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이란 무엇인가요?

이곳에서 하는 활동은 음식 문화를 되살린다는 개념보다는 생존에 가까워요. 여기 회현동은 주로 관광객과 회사원이 이용하는 곳인데, 코로나 영향으로 골목 상권이 침체되면서 상인들이 정말 집세도 못 내는 상황까지도 벌어진 거예요. 그래서 상인분들과 ‘희망 도시락’을 만들어서 판매했어요. 감사하게도 이 사업이 기업에도 알려져 ‘희망 도시락’을 노숙인 무료 급식에 공급하기도 했죠. 또 ‘희망 피자’라는 사업도 하고 있어요. 매주 피자를 200판씩 구워서 인근 지역의 복지원과 보육원에 보내드리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피자를 제일 잘하는 이준영 셰프님에게 재능 기부를 받아 피자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웃음) 그리고 밀가루와 소스 같은 재료는 기업 후원을 받았어요. 이렇게 생계의 위기를 겪는 이 지역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서로 어떤 이익이나 다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진정한 상생의 구조를 만들고 있어요.
“이 로고는 제가 생각한 겁니다. (웃음)”

음식이란 어떤 걸까요? 오랜 시간 음식을 통해 세상을 탐구하며 얻은 메시지가 있는지 궁금해요.

음식은 ‘기억’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와플이나 칠리 핫도그 같은 음식이 대표적인 해장 음식이죠. 한국에선 얼큰한 국물 요리가 대표적이고요. 또 같은 한국 사람이라도 몸살이 났을 때 어떤 사람은 콩나물을 넣어서 끓인 라면이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엄마가 끓여준 우거짓국을 먹어야 몸이 풀린다고 하고, 이렇게 다 다르죠. 이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어떤 경험을 쌓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휴가> 방문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요즘은 사람들이 음식과 요리에 정말 관심이 많죠. 우리가 음식을 먹고 편안하거나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음식이 꼭 ‘맛있는 음식’이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싼 음식점에 가거나, 맛이 강하고 풍부한 음식이 아닌,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음식이라도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해요. 좋은 사람과 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밥을 먹는 그 시간, 그때 느끼는 감정이 더 중요한 거죠. 이게 지금 우리에겐 제일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 같아요.

<휴가休家> 방문객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욱정님의 한 마디는?

최근엔 음식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의학 다큐멘터리도 시작했어요. 촬영하러 병원에 가면서 새로 느낀 게 있는데요. 음식과 병원은 아주 다른 것 같지만 사실 공통점이 있어요. 둘 다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는 거예요. 건강하게 살아 숨 쉬며 정말 맛있는 음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다들 아시잖아요. 또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좋은 기억이 나면 그게 몸과 마음 건강에도 좋은 영향이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건강하게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순간들을 잘 쌓아두는 게 좋겠죠.
이욱정님은, KBS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오래 활동하며 <누들로드>, <요리인류>, <도시의맛>등의 음식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현재 <마인드앳플레이>라는 제작사와 자회사 <요리인류>를 운영하며 음식 이야기를 탐구하는 것에서 넘어서, 음식을 통해서 건강한 사회를 위한 가치 실현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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