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休家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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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선물로 완성된 따듯한 한 끼 식사

“순응하는 삶에서 비롯된 변화” 요리사 ‘황지수’

‘제철’의 의미가 바래진 요즘, 계절의 단락을 넘길 때마다 이곳이 떠오릅니다.
황지수님의 요리 공간, 경우의 수에서 ‘제철 음식을 통한 자기 위안’을 배워 보았습니다.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일 년 중 가장 무르익은 때, 수확한 재료로 요리를 한다는 것은요.”

고소한 기름 냄새와 정다운 칼질 소리가 가득한 이곳은 황지수 요리사가 운영하고 있는 ‘경우의 수’입니다. 매달 새로운 레시피와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죠. 봄에는 달래를 감은 베이글, 여름에는 초당 옥수수가 올려진 푸딩. 경우의 수를 찾은 손님들은 보는 재미와 먹는 행복, 그리고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까지 얻어 갑니다. 재료가 맛있어지는 시기를 좇는다는 요리사의 말에 절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유는 왜일까요. 황지수님과 나눌 오늘의 식탁은 진정한 ‘맛잘알’이 되고 싶은 <휴가> 방문객들을 위한 특별한 식경험입니다.
베이글 하나도 그냥 만들지 않는 황지수 요리사입니다. 향긋한 꽃과 달래를 감은 베이글은 봄을 가득 품고 있습니다. (출처: 경우의 수 인스타그램)

서촌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경우의 수’가 어떤 곳인지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경우의 수는 제철 식재료를 기반으로 한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에요. 현재는 식당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 수업과 반찬 가게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경우의 수라는 이름처럼 한 가지 일에 국한되지 않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에요.
“저는 생버섯보다 말린 버섯을 자주 사용해요. 말린 버섯의 쫄깃한 식감이 좋거든요.”

요즘은 대형 마트나 인터넷에서 원하는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데요. 지수님이 제철 식재료를 고수하는 이유는 뭔가요?

시작은 단순했어요. ‘내가 먹고 싶은 게 뭘까?’, ‘난 무엇을 먹는 게 좋을까?’와 같은 생각들이 기초가 됐죠. 장보기를 좋아하다 보니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재료를 만나게 되는데요. 같은 식재료라 하더라도 제철에 나는 재료를 구입해서 먹어보니 훨씬 맛있고 신선하더라고요. ‘제철 식재료가 아니면 안 돼.’까진 아니더라도, 요리사로서 살아있는 재료를 만나는 것은 에너지를 얻는 일이에요. 재미난 놀잇감을 찾은 것처럼 신이 나서 빨리 요리하고 싶어지거든요.(웃음)
“똑같은 양파를 먹어도 제철에 나는 햇양파를 먹어보면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제철 식재료로 요리했을 때의 장점이 있다면요.

예를 들어 가을 무는 여름 무와 다르게 달큰해요. 그래서 무 수프를 끓일 때 조미료를 더하지 않아도 맛있어요. 양념을 덜 쓰게 되니까 무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죠. 미각이 살아난다고나 할까요.(웃음)

직접 장을 보는 과정이 번거롭진 않나요?

모든 재료에는 성분 표시가 적혀 있는데요. 그걸 보면, 유통기한을 늘리거나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특정 첨가물이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가족에게 줄 음식이라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 바람이 경우의 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 것 같아요. 될 수 있으면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과 똑같이 만들고 싶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장보기를 계속하고 있어요.
“만약 내가 식당을 한다면 가족에게 해주는 요리와 다르지 않길 원했어요.”

장보기 스킬이 많이 늘겠어요. 제철 식재료를 구입하려면 어디를 방문하는 게 좋은가요.

평상시엔 생활협동조합(생협)과 한살림을 주로 가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직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인데, 농부들이 일군 무농약, 유기농 제품이 많아서 애용해요. 그 외에 특정 재료들은 경동시장 또는 제주 민속 오일장에서 찾고 있어요. 제가 제주도에 따로 거처가 있어서 서울과 제주에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데요. 서울에 있을 땐, 경동시장을 방문해 각지에서 올라온 나물들이나 콩, 팥 등을 구입하고요. 제주에 있을 땐, 오일장에서 양하와 같은 제주산 제철 식재료를 구입해 사용해요.
*양하: 생강과에 속하는 채소로, 제주와 전남의 향토 음식에 활용되어 왔습니다. 9월부터 10월까지 제철로, 독특한 향과 쫄깃한 식감을 가지고 있어 김치나 장아찌를 담가 먹습니다.

각지에서 재료를 공수하다 보면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나요? 재료를 안전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바로 쓰는 것이 제일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초절임하는 방법이 있어요. 제주 시장에서 구입한 양하는 하루 이상 놔두면 시들어 버리는데요. 식초에 초절임하면 한 달 이상 보관할 수 있어요. 한동안은 초절임을 응용해 색다른 요리를 만들거나 가르쳐 드리는 방식으로 식당과 수업을 운영했어요.
속절없이 지나가는 가을이 아쉽다면, 양하를 초절임하여 오래도록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출처: 경우의 수 인스타그램)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의외로 요리하기 쉽고 맛있는 제철 식재료가 있다면요.

음… 토란이요! 토란은 감자와 마의 중간 같기도 한데요. 맛과 식감은 전혀 달라요.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제사 음식에 토란국이 종종 나오기도 하죠. 다른 지역에서는 잘 쓰지 않아 토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난번 토란국을 메뉴에 추가해 손님들에게 내었던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요리하는 게 번거롭다면, 그대로 쪄서 먹어도 좋으니 토란을 추천할게요.(웃음) 또 하나는 옥광밤인데요. 늦가을에 수확하는 밤이고, 옥구슬처럼 광이 난다고 해서 옥광밤이라고 불러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밤이라고 하면 한 종류만 떠올리지만, 품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계절에 맞는 다양한 밤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토란은 옥살산칼슘 결정으로 인해 생으로 먹거나 만지면 심하게 가려울 수 있어 토란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은 섭취에 주의하시기 바라요.

주위를 둘러보면 건강한 식단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한데요.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식습관이 있을까요.

사실, 매번 건강식을 챙겨 먹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치킨이 먹고 싶은데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있고, 친구들과 나가서 닭발도 먹곤 해요. (웃음) 다만, 치킨을 먹은 다음 날 속이 좋지 않다면, 감자나 양파로 채수를 내어 수프를 끓여 먹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노력하죠. 그래야지만 좀 더 지속가능하게 내면의 힘을 키우고,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되짚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철 식재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장을 볼 때 재료를 눈여겨보게 돼요.”

마치 다이어트와 같네요.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할 것까진 없으니까요.

맞아요. 또,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해 먹는 게 답이 아닐 수 있어요. 종일 일하고 와서 요리를 하긴 힘들잖아요. 자신에게 맞는 기준점을 찾아 일상에 대입하는 게 더욱 중요할 것 같아요. 요리가 어렵다면, 배달을 시켜도 좋아요. 예를 들면 몸에 좋은 산채비빔밥을 시켜 먹는다거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음식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제철 식재료를 먹는다는 게 건강함과 직결되는 건 아니에요. 그보다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그 음식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고 어디서 왔는지를 되짚는 게 중요하죠.”

“요리를 바로 하는 것보다, 어떤 음식이 자신에게 행복을 줄지 먼저 고민해 보세요.”

요리사로서 지키고 싶은 신념이나 철칙이 있나요?

제가 지키는 것은 하나예요.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을 비우는 것. 예전에는 나와 손님, 우리 가족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비건 음식 또는 무농약, 유기농 재료만을 고집했는데요. 제약이 늘수록 전만큼 쉽게 요리를 시작할 수 없어지더라고요. 그 순간 행복과 멀어지고 있단 것을 느꼈어요. 이후로는 강박적으로 지키려 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즐겁게 요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휴가休家> 방문객에게 전해주고 싶은 황지수님의 한 마디는?

요리는 자신만의 계기가 있어야지만 시작할 수 있어요. 그 계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꾸준히 본인에게 있어 ‘좋은 음식’이란 무엇일까 고민해보길 바라요. 기준이 먼저 자리 잡히면, 나중에 때가 됐을 때 더 행복한 음식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황지수님은, 서촌에 위치한 <경우의 수>의 요리사다. 다양한 식재료의 쓰임새와 레시피를 연구하고, 식당과 수업을 겸하며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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